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은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초국가적 과제다. 이 글에서는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국제 공조의 현재 상황과 그 안에 숨겨진 구조적 한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파리협정 이후의 현실: 선언과 실천 사이의 간극
2015년 파리협정 체결은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범세계적인 합의를 이룬 역사적 사건이었다. 각국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하, 가능하면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공동 목표에 합의하고,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계획(NDC)을 제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선언적 합의’와 ‘실질적 실행’ 사이의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부 국가는 감축 목표를 제출했음에도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이 미흡하거나 실행력이 떨어지며,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경제 성장을 위한 화석연료 사용 의존도가 여전히 높아 기후 대응이 후순위로 밀리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선진국은 이를 이유로 기후 재정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로 지원된 자금은 약속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지원 방식 또한 투명성과 형평성 문제를 안고 있다. 결과적으로 파리협정은 국제 사회의 기후 행동을 하나로 묶는 상징적 틀은 되었지만,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기엔 정치적 의지와 실행 시스템의 결핍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선언은 쉬우나 실천은 어렵다는 냉엄한 진실이 국제 공조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책임의 불균형: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갈등의 본질
지구온난화 문제는 본질적으로 '책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주체는 선진국들이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오히려 저개발 국가와 기후 취약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이 불균형은 국제 공조의 핵심 갈등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개발도상국은 "기후위기의 책임을 먼저 유발한 쪽이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고 맞선다. 이는 국제 협상의 주요 쟁점인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와 ‘공동이지만 차별화된 책임(CBDR)’ 원칙으로 이어지며,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예컨대 아프리카 일부 국가나 남태평양 섬나라들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았지만 해수면 상승, 가뭄, 식량난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선진국의 기후 보상과 기술 이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자국 산업 보호와 국내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협력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책임의 분배 문제는 국제사회가 기후 문제를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면서도 각국의 전략이 제각각이 되는 이유다. 결국 국제 공조는 단순히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합의를 통해서만 진정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 중심 해결의 딜레마: 혁신과 의존 사이의 균형 과제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 대응에서 기술 혁신을 중요한 해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포집 저장 기술(CCS), 수소에너지, 전기차 전환 등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부상했으며, 각국은 경쟁적으로 기술 투자와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 중심의 접근은 과연 모든 국가에 평등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고도화된 기후 기술은 주로 선진국에서 개발되며, 그 기술을 독점하거나 지식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공유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은 첨단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의존적인 구조에 놓이게 된다. 또한 기술적 해법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술 낙관주의’는 오히려 정책적 책임을 회피하게 만들 수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나 소비문화의 변화보다는, 단기적 기술 성과에만 집착할 경우 기후 위기 대응의 방향성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탄소포집 기술을 내세우며 화석연료 사용을 정당화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의 양면성은 국제사회가 기술 개발과 함께 기술 공유, 윤리적 규범, 그리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 전환이라는 다층적 전략을 병행해야 함을 시사한다. 결국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국제 공조의 핵심은 각국이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신뢰와 구조적 설계에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